행복한 아이들이 만들어갈 행복한 세상

행복한 아이들이 만들어갈 행복한 세상

 

 

 

  부모가 아이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처벌하는 것은 행동을 쉽고 간편하며 빠르게 수정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가 지나치게 간편함과 쉬움만 추구하다보면, 아이들은 불편하고 불행해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부모가 조금만 불편을 감수한다면, 아이들은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다(Hoffman, 2000).

 

 

 

 

 


그림 1. 처벌은 행동을 수정하는 쉽고 편리한 방법이지만, 부정적 정서 경험과 반항심만 키우기 마련이다.

 

  부모가 놀이터에서 놀고 집에 온 자녀가 손을 씻지 않을 때, ‘빨리 손 씻어!’라고 명령한다면 아이는 왜 손을 씻어야 하는지 모른 채 부정적 정서만 경험하고, 반항심이 생기며, 행동이 수동적이 되기 쉽다. 그러나 ‘밖에서 놀다 들어오면, 손에 더러운 것이 많이 묻어 있어서 손을 입에 넣거나 밥을 먹거나 장난감을 집으면 그 더러운 것이 그대로 묻어서 감기에 걸리기 쉬워진단다. 놀이터에서 놀다오면 꼭 손을 씻으렴’이라고 설명해주면서 훈육한다면, 이유를 알게 된 아이는 존중받고 있다는 긍정적 정서를 경험하게 되고, 친사회적이 되며, 행동이 능동적이 된다(그림-2).

 

 

 

 


그림 2. 설명으로 훈육하는 것은 아이로 하여금 존중받았다고 느끼게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운 기쁨을 제공한다.

 

  이러한 훈육을 진행할 때 아이의 지능발달과 이해력을 고려하여 설명을 한다면 설명의 효과는 배가 될 수 있다.


  7세 미만의 미취학 아동에게는 가시적이고 직접적인 현상을 설명해주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를 밀치는 행동을 할 때 이를 훈육하고 싶다면,

  “네가 그 아이를 밀치면, 그 아이가 넘어질 수 있고, 울지 않겠니?”

 

  우리 아이가 겨울에 눈덩이를 어느 집 문 앞에 던질 때 이를 훈육하고 싶다면,

  “네가 그 집 문 앞에 눈을 던지면, 그 집 사람들이 나오다가 넘어져서 다치고 피가 날 수 있지 않겠니?”

라고 설명할 수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8~10세) 아이들에게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설명해주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의 인형을 뺏어서 놀았는데 이를 훈육하고 싶다면,

  “네가 정말 메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구나. 네가 메리의 인형을 빼앗았으니 메리가 얼마나 슬펐겠니.”

 

  “네가 그 아이하고 장난감을 같이 갖고 놀지 않으면, 그 아이가 얼마나 속상하겠어. 그 아이가 너한테 똑같이 그런다면 너도 속상하지 않겠니?”

라고 설명할 수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11세) 이상의 아이들에게는 다른 사람의 감정과 그 감정을 왜 느끼게 되는지까지 설명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가 블록으로 만든 탑을 무너뜨렸다면,

  “네가 정말 잘못을 하였구나. 그 아이가 얼마나 속상 하겠니. 그 아이가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생각해보렴. 누군가 네가 열심히 만든 것을 무너뜨렸다면 어떻겠니?”

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의 또 다른 장점은 아이가 처벌 받았다고 느끼지 않고, 좋은 것을 배웠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Pennebaker, 2012). 실상 성인과 아이 모두 처벌 받았을 때는 부정적 정서를 느끼게 되지만, 배웠다고 느끼게 되면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즉 설명을 통해 스스로 생각해 보게 하는 양육방법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그리고 이렇게 부모와 선생님에게 친절한 설명을 들으면서 행복하게 자란 아이들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기여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행복하게 자란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나치는 유대인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강제노동을 시키고, 일을 하다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되면 독가스로 죽이거나, 총살하는 등 유대인 학살정책을 실시했다. 역사가들은 이러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홀로코스트(Holocaust)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러한 나치의 통치 기간 동안 유대인들이 나치의 수용소로 끌려가지 않도록 보호해주거나 감춰준 유럽인들이 있었다(Oliner & Oliner, 1992). 유대인들을 감춰주는 결정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이타심만으로는 어려웠다. 나치군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창의성이 필요했고, 유대인들을 숨겨주기로 결정한 사람 주변인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또한 숨겨준 유대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할 수 있을 만한 경제력도 갖추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위험을 감수할 수 있을 만큼의 마음의 여유, 다르게 표현한다면 행복이 있어야 했다.


  즉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유대인들을 보호해준 유럽인들은 이타심, 지능, 추진력, 주변인들과의 관계, 경제력 등의 다양한 차원에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유대인들을 보호해준 뛰어난 유럽인들과 유대인들을 보호해주지 못한 유럽인들은 과연 어떤 심리적 차이가 있었을까?


  이것에 관심을 가진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 유대인들을 보호해준 유럽인들과 방관한 유럽인들 사이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부모가 그들을 훈육할 때 설명의 방식’을 사용했는지 아닌지에 있었다. 2~10세의 아이들은 6~9분 간격으로 훈육을 받는다. 빈도로 본다면, 아이들은 하루 평균 50차례, 1년 평균 1만 5천 차례 훈육을 받게 된다.


  유대인을 보호해준 유럽인들의 부모는 훈육의 21%에 설명의 방법(reasoning)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뛰어다니다가 넘어질 뻔 했다면, “그렇게 뛰면 넘어질 수 있겠지? 넘어지다가 다치면 너도 아프고, 엄마 마음도 아프잖아”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이렇게 설명을 들은 아이들은 ‘혼났다’는 느낌을 가지기보다 ‘부모가 나를 정말 사랑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존중 받는다’는 느낌을 가질 뿐 아니라, ‘좋은 것을 배웠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훈육방법은 자녀들로 하여금 친사회적인 가치관을 가지도록 하고, 배움에 대한 내적 동기부여를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을 방관한 유럽인들의 부모는 훈육의 6% 정도만 설명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아이가 뛰어다니다가 넘어질 뻔 했다면, ‘하지마!’ ‘그만!’ ‘왜그랬어!’라고 이야기 한 후, 대부분의 경우 ‘왜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이러한 훈육방법은 자녀들의 반항심만 키우게 되고, 현실이나 체제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기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자. 스스로 이해하는 배움의 기쁨을 만끽하게 해주자. 이렇게 행복하게 자란 아이들이 자라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해 본다(그림-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