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구하는 ‘다정함’에 대하여
올해도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과거의 나의 선택과 행동들이 후회되고, 또 지금은 너무 바빠서 자신은 물론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지쳐있는 당신에게 한 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영화다. 개인적으로는 ‘B급 영화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S등급의 명품 영화’라고 소개하고 싶다. 영화의 소재는 멀티버스(다중우주론 : multiverse)다. 여러 우주를 넘나들며 시공간을 초월한 연출을 보여준다. 매우 산만하고 정신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 인생의 정수,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 영화의 제목처럼 말이다.
주인공은 홍콩 대배우 양자경이 맡았다. 가난한 남자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중국계 여성 에블린은 세탁소를 운영하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간다. 삶에 찌들어 관계가 소원해진 남편 웨이먼드는 에블린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하나밖에 없는 딸은 반항의 끝을 달린다. 다시 말해 현생의 에블린의 삶 자체는 혼돈, 즉 카오스다. 이 와중에 세무 당국의 깐깐한 조사까지 받는다. 하필 그 중요한 타이밍에 본인은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알파 웨이먼드가 등장해 에블린이 망해가는 멀티버스의 온 우주를 구해야 한다는 어이없는 소리까지 듣는다.
에블린은 삶에 지쳐있고 늘 바쁘다.
“엄마 기다려봐” 늘 기대치에 못 미치는 사춘기 딸 조이는 엄마에게 마지막 대화를 시도하지만, 그녀는 일에 치여 딸을 돌아보지도 않고 또 다른 일거리들을 처리하느라 내달린다. “기다릴 시간 없어. 바쁘다니까!”
현생의 남편 웨이먼드는 바빠서 자신과는 눈도 마주쳐주지 않는 아내와의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한다. ‘이혼서류 정도의 중요한 일이라면 에블린이 나와 대화를 해줄 거야.’ 이 유약한 남편 대신 가정의 대소사를 책임지고 가장의 역할을 해내는 에블린에게 다른 우주에서 온 알파 웨이먼드까지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서 왔어.”라고 도움을 구하지만, 에블린은 답한다. “오늘 너무 바빠서 도와줄 시간이 없어.”
“너무 바빠. 시간이 없어.” 이 말은 우리도 매일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아닌가?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우리는 가족은 물론 타인과 함께 나누는 시간을 잃고 지낸다.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현대인을 대상으로 「Giving time gives you time」 연구에선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결과를 도출해 낸다. 바로 시간을 나를 위해서만 쓰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가설이다. 연구 결과 이 가설은 정답으로 밝혀졌다. 시간이 없기에 돕지 못하는 게 아니라 돕지 않기에 시간이 없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주는 것’은 행복과 떼려야 뗄 수 없다. 행복한 사람은 남을 위해 주는 것을 즐긴다. 비단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다. 시간을 내어주는 것, 그 사람을 위해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여주는 것, 타인을 돕는 행위는 나에게도 여유와 시간을 선물해주고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이 행복의 비결을 영화 속 주인공 에블린도 멀티버스의 남편 알파 웨이먼드를 도와가며 깨닫게 된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각각 다른 선택을 했다면 우리 미래의 모습도 달라졌을 것이다. 삶은 직진성을 갖는다. 시간이라는 흐름에 갇혀 내가 선택한 이 길만 걷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현재다. 인생의 모든 선택지마다 최악을 선택했던 현재의 에블린에게 온 우주를 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이유는 바로 ‘가능성’이다. 나 또한 과거의 내 최악의 선택들을 되돌아본다면 우울감이 가득 차오른다. 과거만 생각하고 과거의 잘못된 선택들만 바라보고 있었다면 나의 우울은 강이 되고 바다가 되어 아마 그곳에 빠져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수하고 실패했던 경험들이 모이고 쌓여서 나는 물론 타인의 삶까지 구원할 수 있는 힘이 키워진다. 그 힘을 제대로 분출할 수 있도록 해주는 버튼은 뭐니 뭐니 해도 ‘다정함’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숨겨진 에너지를 꺼낼 수 있는 파워 버튼이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왼쪽 오른쪽 신발 바꿔 신기부터 시작해서 입술에 바르는 챕스틱 씹어먹기 등 엉뚱하고 엽기적인 장면들이 이어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어이없어서 실소가 터져 나왔지만, 이는 결국 자신의 감춰진 내공이 빛을 발하려면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관점으로 나와 상대를 바라보고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행동들로부터 시작한다는 메시지다.
영화 속 이 메시지는 무술 능력까지 뛰어난 능력자, 알파 웨이먼드의 입을 빌려 직접적으로 전한다. “내가 아는 것은 우리는 다정해야 해. 제발 다정해지자. 특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모르고 있을 때는 더욱 더.”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도 다윈은 자연에서 친절과 협력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자상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번성하여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 라고 썼다. 우리는 적자생존의 개념을 그동안 잘못 해석해왔다. 다정하고 자상함이 생존 가능한 후손을 남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능력임을 간과했던 것이다. 웨이먼드의 말처럼 다정함은 삶의 전략이 될 수 있다. “나는 전략적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고 사는 법을 배웠지. 다정함의 무기로 나는 이 세상과 맞서 싸우는 중이야.”
영화를 보며 코믹한 장면들에 크게 웃었다가도 어느덧 가슴이 먹먹해진다. 특히 아무 소리 없이 말풍선 대사로만 진행되는 돌멩이 장면에서는 엄마와 딸의 관계, 가족의 이야기에 감정 이입되어 눈물이 났다. 멀티버스의 우주공간을 넘나들며 액션배우, 가수, 요리사 등의 (심지어 돌멩이로 변하기도 한다.) 더 멋진 삶을 살 수도 있었던 자신의 모든 인생을 겪은 주인공 에블린은 온 우주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이 한꺼번에 될 수 있었다 해도 바로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살고 있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행복해지는 가장 좋은 길은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 주변에 있는 이들과 함께 시간을 나누고 다정함의 온기를 나눈다면 추운 겨울을 더 따스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귀 기울여주는 것,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고 돕는 행위는 나에게도 여유와 시간을 선사해주고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임을 잊지 말자. 자, 우리 함께 손잡고 세상까지 구해볼까? ‘다정함’으로 나와 세상을 구할 수 있다!
글: 오란주 행복 교사(오산중학교), 행복연구회 회장